칼 융에 대해

융의생애
융은 1875년 스위스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개신교 목사였다.
4살에 어머니의 교향인 바젤 근교 크라인휴닝겐으로 이사를 했다. 이 무렵 어머니가 어린 융을 집에 남겨 둔 채 장기 요양 생활을 해야 했기 때문에 융은 어린 시절을 주로 아버지와 보냈다. 오랫동안 어머니와 떨어져 지낸 생활은 어린 융에게 깊은 슬픔을 안겨 주었을 뿐만 아니라 사랑이라든가 여성스러움 같은 것에 대한 믿음을 잃게 만들었다. 그 후 ‘사랑’이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나는 언제나 불신감을 갖게 되었고 ‘여성’이라는 말에 대해서 연상되는 것은 불신감으로서 오랫동안 내게는 믿은 수 없는 존재로 기억에 남았다. 그와는 반대로 아버지는 신뢰감과 또한 무력감을 의미했다.
아직 학생이던 시절, 융은 ‘획기적인’ 실험에 참가했다. 죽은 친척이나 그 밖의 영혼들로부터 메시지를 받는다고 주장한 15세된 여자 무당의 사례가 그 것이다. 그 영혼들 중의 하나는 거의 완벽한 표준 독일어를 구사하는 데 비해 그 여자는 몽환 증세가 아닌 각성 상태에서는 오로지 스위스 독일어만을 말했다. 이처럼 뚜렷이 다른 두 가지 인성이 한 소녀 안에 나타난 현상은 융에게 커다란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그가 첫 번째로 출간한 저작은, 의학 학위 논문인『이른바 신비한 현상의 심리학과 병리학에 대하여』인데, 여기에서 그는 이 소녀 무당을 관찰한 사항을 분석하고 있다.
학창 시절에 융은 친척 아이들의 손에 이끌려 테이블 터닝(탁자에 손을 얹으면 탁자가 움직이는 심령 현상) 게임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때 열다섯 살의 어느 소녀가 무아지경에 빠져 평상시 쓰던 구어투의 스위스 독일어가 아닌 독일어 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융은 이 현상에 대단히 놀랐다. 열다섯 살 난 소녀가 갑자기 무아지경에 빠져 교양 있는 여성의 자세와 화술을 보여준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부모님이나 다른 사람들에게서 그 소녀가 원래 약간 신경과민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1907년에는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 된 프로이트를 만나, 그의 제자이자 동료가 되었다.
프로이트와 융의 첫 만남
융은 프로이트의 억압 이론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 중요성은 우리가 어떤 문제에 맞닥뜨렸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생각해보면 분명해진다. 우리는 먼저 가능한 해결책들을 따져보고 깊이 생각해본 후에 하나의 결정을 내린다. 그런데 그렇게 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거나, 무심결에 그 갈등이 억압되면서 의식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있다.

융의생애
프로이트와 융의 만남
정신
의식
융의유형론
개성화
자아
개인무의식
컴플렉스
집단무의식
원형
정신에너지
꿈분석
셩격이론적용
프로이트와 차이
오늘날의 정신세계에 융이 차지하는 의미

Posted by 피오나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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